안과에서 인공지능으로 뭘 할 수 있죠?
예, 저희들도 스피커를 사용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피커부터 불러요. 그런데 이런 걸 꼭 인공지능에게 시켜야 할까요? 손가락 몇 번 까딱하면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요.
이런 것도 다 인공지능이라고 합니다. 굳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뭔가를 해줍니다. 필요한 줄도 몰랐는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뭘 해주니 신기하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묻지 않은 것도 대답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 일에는 늘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이를테면, 스마일(SMILE) 라식 수술 환자의 수술 후 시력이라든가 안내렌즈(ICL) 삽입술을 할 때 환자에게 맞는 렌즈 크기, 백내장 수술의 인공수정체 도수 같은 것들 말이지요.
의사들뿐 아니라 상담사들도 환자들이 검사를 받는 동안 쌓여가는 검사 결과를 보며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
이 분은 수술이 가능할까?
이런 걸 인공지능이 답해준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환자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하며 좀 더 깊고 다감하게 환자들을 만날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어떤 수술이 적합할까?
수술 후에 시력은 어느정도 나올까?
의사들이 숫자로 말하는 이유
의사들은 보통 숫자로 이야기합니다. 좋아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숫자들이 치료에, 시력교정에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겠지요.
“이 환자는 각막은 두꺼운 편이고 오른쪽 왼쪽 근시가 -6.50 디옵터에 직난시*가 2.00디옵터만큼 있으니 수술 노모그램(nomogram)에 이렇게 값들을 넣고 펨토세컨레이저(femtosecond laser)를 요만큼 쓰면 수술 후 난시는 다 없어지고 예상 시력은 1.2가 나올 수 있겠군. 건조증이 적고 동공이 크지 않아서 수술 후 불편함은 크지 않겠어.”
* 초점이 맞지 않아 시야가 흐리게 보이는 난시는 굴절력이 가장 강한 주경선의 위치에 따라 크게는 직난시와 도난시로 구분할 수 있다.
스마일라식 수술로 시력교정을 하게 될 환자를 상담할 때 눈으로는 바쁘게 검사결과를 확인하고 환자의 눈을 세극등 현미경으로 확인하면서 머리로는 빠르게 계산을 해야 합니다. 정확하고 안전한 수술을 위해 몇 번이고 다시 계산을 확인해야 합니다. 환자를 앞에 두고도 각각의 숫자를 정확하게 계산하는데 집중하느라 꼭 확인해야 하는 것들 이상으로 환자의 이야기를 깊이 들을 여력이 없습니다. 만일 인공지능이 이 계산을 대신해줄 수 있다면 우리의 눈은 모니터가 아니라 환자의 눈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밝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 제 눈을 바라보고 있는 환자의 눈을요.
정확한 숫자 계산은 전자계산기가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게 잘 하니까 시력교정수술에 필요한 여러가지 계산도 인공지능이 더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인공지능을 가르친다면 말이에요.
최근에는 인간의 지능을 대신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아니라 인간의 지능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접근한다는 의미에서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후자의 AI라면 우리의 고민을 더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안과에서 이미지를 보는 이유
우리가 인공지능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데는 안과적 특성도 있습니다. 진단 결과를 몇 개의 숫자로 보여주는 다른 진료과목과 달리 안과 검사결과는 거의 대부분 복잡한 숫자들과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검사 결과들은 판독하는 것은 영상의학과와 비슷하죠. 그런데 흑백의 엑스레이와 MRI, CT와는 달리 안과 검사 결과는 입체적이고 컬러풀한 이미지도 많습니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분야가 안과입니다. 한쪽 눈만 검사해도 70여 가지이 이미지 자료가 생기는데 안과의 특성상 양쪽 눈을 동시에 검사하곤 하니 안과에서 생성되는 이미지 데이터가 얼마나 풍부한지, 그리고 안과 전문의는 얼마나 많은 검사결과를 검토한 후 진료 및 수술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같은 안과의 특성 때문에 구글을 비롯한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도 안저검사(fundus photograph)로 망막 나아가 전신의 건강상태까지 판단하는 안과 인공지능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안과의 대표적인 검사로 펜타캠(Pentacam)이 있는데요, 수술 전 각막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고, 시력교정수술을 해서는 안 되는 원추각막도 진단할 수 있는 검사입니다. 이 검사는 각막과 수정체 등 눈의 앞부분을 3차원 고화질로 촬영한 컬러 이미지와 숫자들로 보여줍니다.
모래시계처럼 보이는 검사결과는 수술하기에 적합한 정상적인 각막 모양을 의미합니다.
반면 형태가 위의 이미지처럼 불규칙하거나 말발굽 모양처럼 구부러진 경우에는 시력교정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좋거나, 맞춤형 수술을 고려해야 합니다.
숙련된 시력교정 전문의는 이와 같은 여러 컬러 이미지들의 모양과 숫자들만 보고서도 정상적인 눈인지, 시력교정수술이 가능한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경험을 더해갈수록 검사결과와 치료에 대한 판단과 이해가 깊어지거든요. 즉,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정확한 치료 및 수술 계획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잡한 숫자들과 이미지를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인공지능이 잘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키면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은 수술이 가능한 정상적인 눈과 맞춤형 수술을 해야 하는 눈, 수술을 하면 안 되는 눈을 한 번에 출력해낼 수 있습니다.
안과에서 인공지능으로 뭘 할 수 있지?
수술 환자의 인구통계학적 정보와 의사의 임상 의사결정 데이터베이스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새로운 환자의 검사결과와 만나면 의사의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시스템이 되어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루에 수십 명의 환자를 만나는 의사와 상담사가 5~7년 정도 숙련되었을 때 내릴 수 있는 판단의 정확도를 인공지능에게서 기대할 수 있습니다. 든든한 판단 근거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건 의사에게 좋은 일일까요? 환자에게 좋은 일일까요? 환자는 자신에게 꼭 맞는 안전한 수술 방법을 정확하게 권유받을 수 있어 좋고,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의사에게는 숙련도 편차를 없애줄 수 있어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숙련된 의사에게는 굳이 필요치 않을까요? 꼭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있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사도 사람인지라 피로도나 감정에 따라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실수할 가능성은 있으니까요. 그럴 때 인공지능은 아주 객관적인 더블체크 시스템으로서 의사를 지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47만 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만들었고, 계속 정교화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를 연구 논문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 참고자료
구글의 안저 검사 관련 논문 Clinically applicable deep learning for diagnosis and referral in retinal disease
수술 가능 환자를 선별하는 비앤빛의 인공지능을 소개한 논문 Adopting machine learning to automatically identify candidate patients for corneal refractive surgery